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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의 글로벌시대> 라디오 탄생 110주년과 지구촌 시대 2016-12-21
강혜경 onsegae@hnamail.net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인 1906년 12월 24일 오후 8시, 미국 북동부 매사추세츠주 브랜트록 기지국. 캐나다 출신의 발명가 레지널드 페선던은 아내, 아들, 조수, 기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송신 마이크 앞에 섰다. 크리스마스이브를 축하한다는 인사말에 이어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헨델의 '라르고'를 들려주고, 아돌프 아당 작곡의 크리스마스캐럴 '거룩한 밤'(O Holy Night)을 직접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뒤, 성서 누가복음 2장 14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라는 구절을 낭독했다. 마지막으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치고는 "31일 밤 신년 인사를 하러 다시 오겠다"고 작별 인사를 했다. 인류 최초의 방송이 탄생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해 12월 초 페선던은 미국 북동부 연안을 항해하는 선박의 무선통신사들에게 모스부호로 "크리스마스이브와 제야에 있을 이벤트에 주의를 기울여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무슨 일일까 의아해하며 당일의 이벤트를 기다리던 무선통신사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쓰쓰돈 돈쓰 돈돈돈쓰 돈돈쓰…' 식으로 장단의 기계음만 내던 스피커에서 갑자기 사람의 목소리와 음악이 흘러나온 것이다. 불과 몇 분 만에 다시 귀에 익은 모스부호가 삑삑거렸지만 이들은 벌어진 입을 한동안 다물지 못했다. 이 소리는 멀리 320㎞ 떨어진 곳에서도 또렷이 들렸다. 이것이 바로 라디오의 기원이었다.


  라디오 시대의 개막은 페선던 혼자만의 공로는 아니었다. 독일 물리학자 하인리히 헤르츠가 1888년 전자기파(전파)를 발생시키는 방법을 고안했고, 이탈리아 기술학도 굴리엘모 마르코니가 1894년 무선 송수신 실험에 성공했다. 마르코니는 1899년 영국·프랑스 간 도버 해협에 이어 1901년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무선통신을 주고받는 데 성공했다. 당시에는 지구가 둥근 데 비해 전파는 직진하기 때문에 무선통신 유효거리가 160∼320㎞를 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대기 상층부에 있는 전리층이 전파를 반사해 지구 반대편까지 전달한다는 사실은 1925년이 돼서야 알려졌다. 검파 기능을 지닌 2극진공관을 개발한 영국의 존 엠브로즈 플레밍, 증폭 기능까지 갖춘 3극진공관을 발명한 미국의 리 디포리스트 등도 라디오 발명의 빼놓을 수 없는 공로자들이다.



  음악방송 사업에 먼저 나선 것은 디포리스트였다. 1907년 미국 뉴욕에서 음악방송 사업을 시도한 데 이어 1908년 프랑스 파리 에펠탑에서 라디오 시험방송을 했다. 이 방송은 885㎞나 떨어진 곳에서도 들려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라디오의 발달은 특허권 분쟁 등에 따른 수신기의 보급 지연으로 한동안 주춤하다가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탄력을 받았다. 참사 소식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라디오의 위력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는 그해 정부 허가 규정을 담은 라디오법을 통과시켰으며 미국 해군은 브로드캐스팅(broadcasting)이란 신조어를 처음 사용했다. 1918년 제너럴일렉트릭(GE)과 미국 해군이 RCA를 설립한 데 이어 1920년 웨스팅하우스는 최초의 정시 상업 라디오방송국 KDKA를 출범시켰다.


  KDKA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야구와 복싱 경기를 생중계하고 증권 시황을 방송하는 등 수많은 '세계 최초'의 기록을 쌓아나갔다. 1923년이 되자 미국 전역에는 550여 곳의 방송국이 생겨났다. 1922년 0.2%에 불과하던 라디오 보급률은 1925년 10%, 1927년 20%, 1929년 30%, 1930년 40%로 급증했다. 일본은 1925년 3월 22일 도쿄에서 첫 방송을 시작했고, 우리나라에서는 1927년 2월 16일 오후 1시 최초의 라디오 전파를 쏘아 올렸다. 이로써 한반도 주민들도 세계 각국의 소식을 동시에 듣고 인기 가수의 노래에 똑같이 열광하게 됐다.


  '지구촌'(global village)이라는 말은 영국의 공상과학소설가 아서 클라크가 1945년 잡지 '와이어리스 월드'(Wireless World)에 게재한 소설 '외계로부터의 전달'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다. 그는 당시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개념을 창안했는데, 인공위성을 통한 무선통신으로 온 인류가 한동네 사람처럼 정보를 공유하고 지낸다는 설정이었다. 그는 지구의 자전 속도와 똑같은 빠르기로 움직이는 정지궤도 위성도 생각해냈다. 이는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되기 12년 전이고 최초의 정지궤도 위성 신컴 2호가 발사되기 18년 전이었다. 클라크 궤도라고 불리는 지상 3만6천㎞ 높이의 정지궤도 위성 덕분에 전리층을 통과하는 극초단파를 이용한 TV 방송과 이동통신 등도 비로소 세계화될 수 있었다.


  진정한 지구촌 시대의 도래는 1991년 상용 인터넷의 등장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2000년대 이후 급속도로 보급된 스마트폰과 SNS 출현이 가세했다. 이제는 전 인류가 촘촘한 그물망으로 엮이면서 누구나 개인용 휴대단말기를 이용해 수시로 나라 밖 사람들과 안부를 주고받고 지구 반대편의 소식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110년 전부터 급속히 진행돼온 세계화의 물결을 축복으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다. 19세기 말 교통·통신의 발달이 제국주의에 날개를 달아주고, 1960∼70년대 방송의 보급이 우리나라 독재체제에 이용된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인터넷과 SNS가 사생활을 침해하고 빅 브러더의 통제를 가능하게 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도도히 흘러온 기술문명의 발전과 그에 따른 사회 변화의 추세를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이지만, 지구촌 시대가 요구하는 세계시민의식을 갖추고 디지털 세상에 걸맞은 가치관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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